복음묵상

연중 제6 주일

임젤덕산 2014. 2. 17. 12:21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 1~12
“만약 너의 정의가 더 옳지 못하다면” -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경
(“Unless Your Justice Exceeds” - Respect For Others)
마태오 5, 20-26


1.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거의 웃어주지 않는 사람
(A Person laughing hard at the mistakes of others)
2. 저의 왕이시여, 제가 결코 비웃거나 이상하게 볼 수 없는
모든 사람의 존재에 대해 존중하는 은총을...
(The grace, my King, to respect every human being
so much that I'll never laugh at ridicule anyone)

설교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문제의 하나에 대해 지금 대답해주고 계시다 :
“모세의 법에서는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러 오셨다.
예수님의 복음의 법은 오히려 더 위대한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당신들의 정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못하다면
당신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모범으로
우리의 이웃을 향해 마음을 쓰는 자선에 대해 말씀하셨다.
옛 법에서 살인을 금했다 - 이것은 증오하는 것의 결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아주 작은 위반 행위조차도
잘못하는 것이 된다.
즉, 화를 내는 것(물론, 불필요하게) 혹은 우리 이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 이웃을 비웃거나 조소하는 것 - 모든
이와 같은 공격성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내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저의 주님이시여,
저는 당신의 금지에서 왜 이러한 공격을 포함하셨는지
이유를 얼른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살인의 육체적인 해를 입히는 것 혹은 다른 더 작은 육체적인 상처는
저희가 저희 이웃을 심각하게 상처 입힐 수 있는
다만 하나의 방법입니다.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저희는 저희의 날카로운 면도칼 같은
야유의 날카로운 혀로 좀 더 상처 입힐 수 있습니다.
조소의 칼은 강철보다 좀 더 깊게 저희 이웃의 감정에
싸움이 되기에 충분한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고 꽤 자주 상처는 단순히 그 순간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조소는 어떤 사람의 의식 안에 깊게 먹어들어 가고
그 자신에 대해서 내적 감정을 그에게 주도록 돕습니다.
궁극적인 결과는 그렇게 멀리 도달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부끄럽게, 마음 약하게, 신경질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 혹은 그밖에 그의 인간성에 그 힘이 싸울 만큼
다시 모아져 규합될 때 분노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저희의 조소와 비웃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 저의 왕이시여,
저는 비웃음과 조소는 그렇게 많은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비록 제가 비록 그 사람의 얼굴에
조소를 결코 하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실을
비웃는 것에 탐닉하지는 않는가요?
저는 다른 사람의 잘못과 특유한 표현법과 약점을
재미로 조금씩 찌르지는 않는가요?
이것은 많은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여전히 상처받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찌르는 것입니다 - 당신께서
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그 고귀한 영혼!
저의 왕이시여,
제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유머 - 예! 다른 사람과 더불어 좋은 유희와
웃음 -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조소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도 아닙니다!
저의 왕이시여,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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