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분실소동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말도 통하고
그럭저럭 가정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던 중
직장생활이 힘들어지면서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자꾸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아졌다.
어느 날 주말도 그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그 사이 빨리 돌아오라고 수차례 전화가 걸려오자 짜증내가며
곧 가겠다고 하던 게 새벽 두 시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늦게야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오토바이가 보이질 않는다.
아차!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오토바이 키가 없다.
오토바이에 키를 꽂아둔 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사이 오토바이가 사라진 것이다.
길가에서 누구를 붙들고 오토바이를 물어볼 수도 없는 황당한 상황이다.
시장과 집과의 거리는 서너 정거장 정도라
손쉽게 오토바이를 이용해 동네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갑자기 이 오토바이가 온데간데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는 수 없이 터덜터덜 집까지 걸어서 돌아와
“혹시~ 내 오토바이 못 봤어요?”
묻자마자 아내는 버럭 화만 낼 뿐이었다.
“내가 오토바이를 어떻게 알아요?!”
“하기야 내가 뜬금없이 오토바이를 묻는 게 이상하잖아?"
스스로 반문하며 할 말이 없다.
오토바이를 베트남에서 잘 타던 아내였으나
한국에서는 불안해서 일체 오토바이를 맡길 수 없기에
탄 일도 없었다.
딱 한 번 공원에 잠간 받혀둔 오토바이를
조금 타보던 모습을 본 일은 있었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다가
진정 잃어버렸음을 재삼 확인하고는 참 허전했다.
그 늦은 밤에 오토바이 놔둔 곳까지 알고 왔을 리도 없겠고
타고 갔을 리는 더욱 없겠지...
오토바이를 잃고서야 “있을 때 잘 해” 라는 말을 실감했다.
하루 종일 잃어버린 오토바이가 어디로 어떻게 도난 됐을까 궁리했으나
눈에만 선할 뿐 종적을 알 수 없고 찾을 길이 묘연하다.
그래! 내가 술만 먹고 그러니깐 이제 도둑까지 들게 되나보다.
내가 왜 늦게까지 술을 먹었을까... 일찍 일찍 오는 건데...
그저 편리하게만 사용할 줄 알고 소중한 줄은 모르고....
오토바이 키를 잘 챙겼어야 하는 건데...
건성으로 물건 아까운줄 모르고 놓고 다니다가.....
사람이 살다보면 별 일도 다 있고 한 번 잃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있을 때는 당연하게만 여기던 열쇠, 핸드폰, 지갑, 수첩 등을
어쩌다 잊어버리고 나면 보통 낭패던가.
잃어버린 오토바이는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집 열쇠부터 복사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아내가 저녁 때 직장에서 돌아와서도 어젯밤 일로
여전히 나에게 불만과 냉정한 태도를 보이기에
오토바이 잃어버린 죄까지 추가되어 가만히 인터넷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아내가 갑자기 말문을 연다.
“내가 오토바이 찾아주면 얼마 줄 거야?”
얼마??? 엥? 오토바이 어딨어....!! 가져갔지....!!
반가운 마음에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결국 오토바이는 그 야밤에 아내의 손에 이끌려
아래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몰래 고이 숨겨져 있었다.
그래놓고 심드렁한 나를 보고도 하루 종일
시큰둥 새침때기 짓을 했던 것이다.
열쇠를 받아들고 부랴부랴 오토바이 놓아둔 곳을
찾아가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잃어버렸다 찾아 끌고 나온 오토바이가
어찌나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졌던지 새로 산 기분보다
더 큰 행복한 기분이었다.
아내는 말했다.
“당신의 하루 동안 마음고생은 내가 지난 밤새
당신이 집에 오지 않아 힘든 것과 같다고.....”
그래도 그렇지 나 같으면 차마 그렇게 하루 동안이나
말하지 않고 골탕을 먹일 수야 없을 텐데....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정말 은근히 독한 데가 있다.
그래도 좋다. 행복이란 것도 참 희안하다.
그러나 이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예전의 초창기 한국 베트남 부부들은
여러 면에서 매우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 자신이 조금만 정보를 구하면
건강가정지원센터나 복지관 등 국가적으로 다문화가정을 돕는
여러 주변 사회단체들이 있어서 같은 처지의 한국베트남 커플들과 만나
국제결혼의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무한한 꿈을 꾸며 자라날 것이고
다가오는 미래의 글로벌 한국에 큰 자산이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홀연히 인연을 맺은 베트남 아내로 해서
내 생활은 늘 감사하고도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이것이 내 개인의 가정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세상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도 좋지 않은가.
삶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많은 아시아 사람 세계 사람들이
서로 만나 행복을 나누고 어울려 즐기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거리의 모습을 꿈꿔 본다.
만사가 늦어진 인생이라지만 흔한 속담으로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천천히 새로운 삶을 엮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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