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사람은 복되다” - 슬픔, 하나의 친구
(“Blessed Are They That Mourn” - Sorrow, A Friend)
마태오 5, 5
1. 갈바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마리아의 얼굴
(The face of Mary as she watched Jesus on the road to Calvary)
2. 선한 사람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은총을...
(The grace to see the good that suffering can do)
진복팔단의 처음 두 가지에서
만약 우리가 거룩함과 위대함을 성취하려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초연할 필요와
우리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초연할
절대적인 필요에 대해 가르치셨다.
진복팔단의 세 번째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초연함에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함을
깨닫도록 해주신다.
세속적인 것의 손실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겸손과 모욕을 겪게 될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대범하게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완벽함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이상한 눈초리를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우리를 쉽지 않게 한다;
슬픔은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것을 당할 때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결국 그것을
우리에게 확인해주셨다; 고통을 겪은 후에
편안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저의 주님이시여,
이 세 번째 진복팔단은 고통이 올 것이라고
친절하게 경고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지어 고통 후에 평화가 다시 올 것이라는
확신도 아닙니다.
당신의 “복되다 하심”은 그 이상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슬픔에 뭔가 매우 좋은 것, 고통 받는 것에
매우 부유해지는 뭔가를 거기에 내포하고 계십니다.
저의 주님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진실입니다.
슬픔은 저희를 사려 있고 생각 깊게 하고
저희를 친절하고 동정적이게 합니다; 세속적인 것의
공허함과 천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합니다.
저의 왕이시여,
이것이 당신께서 당신의 어머니에게
그러한 슬픔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당신께서는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천사의 여왕과 인간의 여왕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가 슬플 때 저는 얼마나 어린 아이와 같은가요!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저 자신이 마음을 쓰는 것 대신에
그것을 가지고 저 자신에게 마음을 씁니다.
저는 크고 회상적인 슬픔이 얼마나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 가는지 잘 보지 못합니다.
저의 왕이시여,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당신들의 성인 성녀들이 그러했듯이
위대한 영혼을 가지고 슬픔의 순간에
저를 발전시킴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의 기쁨이 비록 슬픔 안에서일지라도
저에게 평화롭고 평온함을 가져오게 해주십시오.
마더 로즈 호쏜이 그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
“나의 친구 슬픔이여,
나는 내 영혼이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만약 나의 삶이 어떤 영광으로 끝맺는다면,
그리고 만약 그 말들이 진실이라면,
말하라, 슬픔이여, 내가 죽을 때,
슬픔이여, 너에게 영광을,
너에게 장례의 화환이 맞을 것이다.”
거룩함의 몇 가지 표시가 있습니다 - 대범함,
이해, 영혼의 위대함과 감정의 깊음 - 이것은
슬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주님,
이것이 당신께서 슬픔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제가 그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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