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으로 태어난 남자(4) - 거룩한 섭리
(The Man Born Blind(4) - Moral Courage)
요한 9, 1-41
1. 바리사이들의 얼굴에 실망스런 기색
(The desperate looks on the faces of the Pharisees)
2. 저의 주님, 당신을 지지하고 원칙을
지지하는 커다란 용기의 은총을...
(The grace, my Lord, of great courage
to stand for You and for principle)
염려하는 법정에서 치유된 사람이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말했을 때 바리사이 가운데
증오의 요소가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그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라며
조롱하고 외쳐대며 날조했다.
“그를 그의 부모한테 보내라!” 대법관이 참석자들에게 외쳤다.
“우리는 이것의 밑바닥부터 조사할 것이다.”
똑같은 막대한 형식들이 법정의 두려움을
그들에게 먹히도록 희망하면서 그의 부모들에게 가해졌다.
법관은 그들에게 맹세하라고 했고
그들이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경고하며
“반역죄”는 나라에서 파괴분자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아주 딱딱한 목소리로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인 당신들 아들인가?”
그들은 “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떻게 그가 보게 되었는가?”
그 가엾은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이 치유될 때 그곳에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생활이 바른 이야기를
주는 것이 아닌가 혹은 정확한 세밀함에 두려워했다.
“우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시오!”
판관들은 역겨워했다. “증인을 불러라!”
그들은 집사를 불렀다.
그들은 새로운 그 사람 안에서 새로운 용병술을 시도하려 했다.
그들은 이제 친절했고 치유된 사람은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그가 볼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일어난 점에 대해 명백히 해야만 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라.”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확실히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 다음 그들의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계속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임을 알고 있다!”
비록 그것이 너무나 그에게 동의하기 위한 유혹이었고
이 모든 곤란함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라도
치유된 사람은 그들의 호소 앞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존경하였고
그가 그것을 그들에게 말했고
그는 사실을 직면해야만 했다.
“그분께서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전에 소경이었던 내가
지금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 말에 분개를 했고 분노를 표명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외쳤다.
“어떻게?” “왜?” “어디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그의 제안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의심스러운 출생에다가 낮은 신분인데! 그런 다음 조용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방어하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
치유된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귀를 막았다; 그들은 학대를 쌓아올렸다.
“그를 쫓아내 버려!”
전능하신 분이시여,
그 사람의 용기를 저는 얼마나 칭찬해야 할까요!
깨달은 것 안에 있는 것을 준다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쉬웠습니다.
결국, 바리사이들은 신학자였고, 그는 아니었습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하나의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의를 가져오게 되고
그래서 그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저의 왕이시여,
그리고 얼마나 멋진 말이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비록 홀로 서 있어야만 할지라도
당신을 위하여 그리고 원칙을 위하여 서 있었습니다.
오, 저의 주님,
저는 인간의 덕과 그것을 기른 마음의 용기를 칭송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에 편승하고 변명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쉽습니다.
저에게 멋있고 인간다운 용기를 주십시오!
완고함이 아닌 것!
우선 제가 옳다는 것에 확신하게 해주십시오.
그런 다음, 존경하는 왕이시여,
만약 필요하다면 제가 앞으로 나가 싸울 수 있게 해주시고,
홀로 서 있어야만 할지라도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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