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재의 수요일(3)

임젤덕산 2011. 3. 13. 22:47
          
          수함(3) - 단식
          (Simplicity(3) - Mortification)  
           마태오 6, 16-23 
          1. 슬픈 기색을 한 바리사이 얼굴 
             (The Pharisee with sad, long faces) 
          2. 저의 주님이시여, 매일의 의식 성찰에 진지할 은총을...
             (The grace, my Lord, of sincere, 
             daily examinations of conscience)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순수한 지향의 단순함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가 이런 것이 없이는 
          소용없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진리의 빛 안에서 
          단식과 고행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단지 거룩한 사람인 듯이 
          나타내 보이려고 단식하는 바리사이와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얼굴을 찡그리고 우울하게 보여서 
          자기들이 훌륭한 희생을 드리고 있고 
          그들이 영적으로 깊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모든 것 안에 어떤 종교적인 것이 없다면 
          다만 종교적 행위에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인간적인 흥정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존경심을 
          얻기 위하여 이러한 불편함을 감당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흥정하는 것을 
          얻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셨다 - 인간적인 
          칭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변화하지 않았고 
          그들의 생활은 아름답게 되지도 않았고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칭찬도 없다!
          
           
          
          
          전능하신 분이시여,
          만약 제가 거룩함의 자기 수련을 얻으려 하지 않으면 
          신앙의 크나큰 중요성과 진지한 
          의식 성찰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절반만 옳았습니다.  
          그들은 만약 단식과 자기 수련에 의해 
          점검되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저희의 비규율적인 열정에 영적인 것을 없애려고 
          저희에게 다그쳐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약한 열정의 하나를 극복하려 한 것이지 
          그들은 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통제되지 않은 교만과 기만을 삼키기 위하여 
          음식을 단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바로 그 고행은 그들의 처음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쏘기 전에 
          하나의 목표를 가져야만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저의 지배적인 열정, 저의 큰 잘못, 
          그 잘못이 완전한 자선에 관련된 것인데 
          단식 혹은 어떤 고행 전에 저를 어떤 영적 선으로 
          가게 할 수 있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만약 제가 교만하다면 그 때 단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고치는 것과 겸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고행입니다.  
          만약 제가 게으르다면 제가 고행하는 것은 
          두 번째 속임수입니다;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열성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바로 그것이 희생제사입니다.  
          그리고 만약 저의 큰 유혹이 감정적인 것이라면 
          그렇다면 육체적인 고행은 저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표를 바로 보아야만 합니다!  
          저는 자신을 진지하게 매일매일 의식 성찰하면서 
          솔직하게 사정을 두지 말고 직면해야만 합니다.  
          다만 그렇게 될 때 저는 진실하게 될 것입니다.